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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1) _ 오펜하이머는 누구인가, 인물탐색

by zuuvar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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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2023.08.16 기준)

2023년 8월 15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의 물리학자가 참여하는 핵개발 프로젝트를 내용으로 한 영화이다. 세상을 바꾼 개발과 그 주요 인물들에 대한 내용을 영화로 만나보기 전, 주인공인 오펜하이머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영화를 더 이해해 보도록 하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누구세요?

오펜하이머

일단 서론 없이 소개하자면, 이분은 세계 최초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천재 물리학자이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라는 어록을 남긴 핵무기 개발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년 4월 22일 뉴욕 출생, 1967년 2월 18일 사망한 인물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라이스트 컬리지에서 물리학 중퇴,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천재 물리학자이다. 

 

어린 시절, 양복 사업을 하던 독일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로 인해 뉴욕에서 상당히 부유한 집안 아이로 자랐다. 뉴욕 에티컬 컬처 스쿨에서 자유롭고 탐구적인 정서적 영향을 받았고, 취미로는 광물들을 수집하고 그 특유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에 흥미가 있었다. 학업적으로는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였으나 사회성이 없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교육 환경도 훌륭했으나 워낙 탁월하고 빠른 학습능력을 가졌던 오펜하이머는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매년 남들보다 1.5배 더 많은 학점을 따면서 4년제 과정을 3년 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언어 공부에도 흥미가 많았던 그는, 그리스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외국어에 유창함을 보였다.

 

하버드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물리학과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맥스웰, 톰슨, 러더퍼드, 보어, 패드윅, 왓슨, 크릭 등의 유명 인사들로 대표되는 캐번디시 실험실의 실험물리학 학풍과 잘 맞지 않았던 데다가, 재학 중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갖게 되고, 지도교수를 독살하려 했다는 등의 후문이 있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닐스 보어의 조언에 큰 영향을 받아 결국 케임브리지를 떠나 독일의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가 지도교수인 막스 보른의 지도 하에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한 물리학을 공부했다. 유창한 외국어 능력과 잘 맞는 학문 덕에 다시 열정적으로 학업에 집중해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의 오펜하이머는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거만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성에 안 차는 교수를 교단에서 끌어내려 자신이 수업을 하는 기행과 같은 소행이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선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굉장히 싫어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후 귀국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잠시 재직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직을 맡게 되었으며, 동시에 UC 버클리 대학의 교수로도 임용되어 학기를 나누어 두 곳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초반에는 수업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빠르게 향상되어 많은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그의 수업을 두번 세 번 들으려는 학생들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교수이자 연구자로서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냈고, 특정 상황의 중성자별 질량이 태양의 3배를 넘기면 중력붕괴를 일으켜 블랙홀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며 톨만-오펜하이머-볼코프 한계(TOV Limit)를 만들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42년에 맨해튼 계획이 시작됐다. 맨해튼 계획이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미국이 주도, 영국과 캐나다가 참여한 극비 핵무기 개발 계획이자 실전용 대량살상무기 제작 군사 작전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맨해튼이지만 실제로 맨해튼은 연구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 외 약 30군데 지역의 시설에서 연구개발이 진행됐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이 이 계획에 차출되었고,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분열 반응을 통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미국은 최대한 빨리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촉구했고, 한화로 약 40조 원에 이르는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어 3년 만에 완벽히 성공했다. 

 

이렇게 개발된 핵무기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에 투하되며 일본은 항복하고 태평양 전쟁이 끝났으나, 핵폭발로 인한 그 지역의 참상이 드러나면서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에 대한 회의론적인 감정을 크게 느낀다. 따라서 더 큰 폭발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최대한 반대하고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러던 중 소련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에 모두 성공하게 되면서, 오펜하이머는 스파이나 빨갱이라는 누명을 쓸 정도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모든 공직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모든 권한과 직위에서 쫓겨난 오펜하이머는 은퇴 후 해안가 땅을 매입해 그곳에서 가족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물리학에 관한 연구와 논문을 작성을 지속했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과학적인 지식을 계속해서 확장시켜 나갔다. 시간이 더 흐른 후 1962년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추대되고, 그 다음 해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뜻에 따라 엔리코 페르미 상을 수여받았다. 평소 굉장한 흡연가, 애연가였던 탓인지 그는 1965년 후두암 진단과 투병 이후 1967년 향년 62세로 사망했다. 그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2022년에서야 오펜하이머의 소련 스파이 혐의가 벗겨지게 됐다. 

 

오펜하이머(2023.08.15 개봉) 메인 예고편

출처: 유튜브 채널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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